오늘 중국 소식, 무화과부터 해외 안전까지

part1 공감하기 위한 소식

오늘 중국 소식, 무화과부터 해외 안전까지

공감 지기 2025. 7. 2. 1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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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공감지기입니다. 7월 2일 수요일 오전 10시, 베이징의 기온은 29도 가까이 오르며 활기찬 하루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

오늘 '공감의 시작' 블로그에서는 중국 주요 국영 통신사인 중국신문서비스 웹사이트에서 주목받고 있는 소식들을 통해 중국의 다양한 면모를 함께 살펴보려 합니다. 이 소식들은 단순히 사건을 전달하는 것을 넘어, 그 안에 담긴 사람들의 이야기와 정서를 통해 우리와 연결될 수 있는 공감 포인트를 제시해 줍니다.

신장 지역의 아름다운 무화과 마을 이야기부터, 역사 교육에 대한 깊은 성찰, 그리고 긴박했던 해외 철수 작전의 감동까지, 오늘은 중국의 여러 얼굴을 마주하게 될 것 같습니다. 이 소식들이 우리에게 어떤 공감 포인트를 던져줄까요? 함께 따라와 주시죠.

먼저 신장(新疆) 위구르 자치구 서부에 위치한 아투스(阿图什)시의 흥미로운 소식입니다. 이곳은 '중국 무화과의 고향'으로 알려져 있는데요, 특히 아쯔한(阿孜汗) 마을의 '무화과 풍정 거리'가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얻고 있다고 합니다. 

이곳의 역사는 2천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장건(张骞)이 서역에서 무화과를 들여왔고, 이후 아랍 상인들과의 무역을 통해 아쯔한이 무화과가 중국에 처음 들어온 곳 중 하나가 되었다고 해요. 현재 이 마을에는 1108묘(약 74헥타르) 규모의 무화과 나무가 심어져 있으며, 그중 100여 그루는 수령이 450년이 넘는 고목이라고 하니 정말 놀랍죠.

지난 2023년에는 장쑤(江苏)성 쿤산(昆山)시의 지원을 받아 아쯔한 무화과 민속 문화 관광 단지가 문을 열었고, 이 무화과 풍정 거리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거리에서는 후얼시단(胡尔西旦) 씨의 꼬치구이 가게가 인기를 끄는데, 그는 자신의 무화과 셀프 채집원을 홍보하며 예전처럼 일일이 열매를 따서 시내에 내다 팔 필요 없이 현지에서 바로 해결할 수 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꼬치구이도 무화과로 숙성시킨다고 하니 그 맛이 궁금해지네요.

또 다른 주민인 팔리단(帕力旦) 씨는 원래 전업주부였지만, 거리에서 의류점을 운영하며 가업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그녀는 집안에 2묘(약 0.13 헥타르)의 무화과 밭이 있는데 주로 시부모님이 돌보신다고 해요. 가게에서는 신장 이드레스 비단으로 만든 신중식 치파오가 특히 눈길을 끄는데, 성수기에는 하루에 최소 50명 이상이 문의할 정도로 장사가 잘 된다고 합니다.

무화과 풍정 거리에서는 이처럼 마을 특색을 살린 다양한 '부업'들이 번창하고 있습니다. 무화과를 곁들인 신장 요거트 빙수, 무화과를 넣어 구운 *낭*(신장 전통 빵) 등 독특한 음식들이 방문객들의 입맛을 사로잡고 있답니다. 무화과 생태원 식당에서는 무화과 나무 아래서 결혼식을 올리고 무화과 닭고기탕을 즐기는 모습도 볼 수 있다고 하니, 무화과가 단순한 작물을 넘어 문화와 생활 속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죠.

주민들의 '본업'인 농사 또한 체계적으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풍정 거리의 갈림길에는 농가로 향하는 나무 데크길이 있는데, 68가구의 과수원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각 집 대문 앞에는 농가 이름과 무화과 나무 수령이 표시되어 있어, 원하는 집의 무화과를 현장에서 구매하거나 QR 코드를 스캔하여 온라인으로 건과일 등 가공품을 구매할 수도 있습니다. 현대 기술이 전통 농업에 접목되어 새로운 판로를 개척하는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서부 계획 자원봉사자'인 왕옌진(王燕瑾) 씨는 예전에 황무지였던 곳들이 지금은 자전거 도로, *낭* 문화를 보여주는 부조 벽화 등으로 크게 변모했다고 말합니다. 또한, 예전에는 유통기한이 3시간밖에 안 되던 무화과가 액체 질소 기술 덕분에 신선하게 보존되어 전국 각지로 판매될 수 있게 되었다고 하니, 기술의 발전이 지역 특산품의 가치를 얼마나 높일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네요.

아쯔한 마을 농업 책임자인 압두살람(阿卜杜萨拉木) 씨에 따르면, 2024년 마을 무화과 판매액은 1천5백만 위안(한화 약 28억 원)에 달했고, 관련 가공업 판매액도 2백40만 위안(한화 약 4억5천만 원)에 육박했다고 합니다. 올해는 무화과 심층 가공을 늘리고 품질을 높여 관광업 발전을 더욱 강화할 계획이라고 하니 앞으로가 더욱 기대됩니다.

무화과 민속 문화 관광 단지 총경리인 관즈쥔(关智俊) 씨는 입장료를 받지 않고 시장 운영 방식으로 관광객을 유치하여 주민들의 자영업 수입을 늘리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현재 이 관광지는 국가 4A급으로 격상되었다고 밝혔습니다.

아쯔한 마을의 사례는 아투스시 전체가 무화과 산업 체인을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한 단면입니다. 시내와 신도시 사이에는 무화과 모양의 가로등이 설치된 영안대로가 놓여 관광객들을 인기 명소로 안내하고, 정부는 하이더쿤(海德坤) 그룹을 유치하여 재배, 연구개발, 가공, 문화 관광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중국 서부 최초의 세계 무화과 품종 박람원 조성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최종적으로 5만 묘(약 3333 헥타르) 규모의 3차 산업 융합 단지를 조성하여 지역 경제를 활성화하고 1만5천명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니, 농업과 관광, 가공업이 결합된 미래 농촌 발전 모델을 제시하는 것 같습니다.

다음 소식은 역사 교육과 기억에 대한 깊은 성찰을 담고 있습니다. 최근 24명의 대만 동포들이 네이멍구(内蒙古) 후룬베이얼(呼伦贝尔)에 위치한 세계 반파시스트 전쟁 해이랄 기념 공원을 방문하여 항일 전쟁 당시의 유적지를 둘러보았다고 합니다.

특히 그들은 해이랄 요새의 지하 방어 시설 깊숙한 곳까지 들어가 당시의 참상을 접했는데요. 1934년 일본 관동군이 건설한 해이랄 요새는 5개의 주요 진지와 10개의 보조 진지로 구성되었으며, 지하 시설은 깊이가 17미터에서 21미터에 달했다고 합니다.

요새 건설 과정에서 일본 침략군은 수만 명의 노동자를 강제로 동원했고, 공사가 완료된 후 이들을 모두 학살하거나 생매장했다고 합니다. 지하 시설 입구에 전시된 노동자들의 유골은 당시의 끔찍한 역사를 생생하게 보여주었습니다.

습기가 차고 미끄러운 돌계단을 따라 지하 시설로 내려가며 대만 동포들은 깊은 충격을 받았다고 해요. 옹(翁) 씨는 노동자들의 유해를 보며 일본군이 '노동자 모집'이라는 명목으로 사람들을 속여 강제 노역을 시켰으며, 장위푸(张玉甫)라는 한 사람만이 병자 수용소에서 탈출하여 이러한 피눈물 나는 역사를 세상에 알렸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대만 동포 류(刘) 씨는 차가운 지하 갱도에서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대만에서의 참혹한 학살 이야기를 전했습니다. 1896년 윈린(云林) 지역에서 불과 7일 만에 70여 개 마을이 파괴되고 수만 명의 동포가 학살당했으며, 일본 식민 통치 기간 동안 좋은 것은 모두 일본으로 가져가고 변두리 것만 남겨두었다고 비판했습니다. 특히 그는 이러한 역사가 현재 대만 교과서에 제대로 기록되어 있지 않음을 안타까워했습니다. 민진당(民进党) 당국이 교육 과정을 개정하면서 많은 역사가 간략하게만 언급되거나, '일점'(일본 점령)을 '일치'(일본 통치)로 변경하여 침략을 통치로 미화하고 있어 젊은이들이 일본이 대만을 '건설'했다고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이죠. 

'00년생' 대만 청년인 잔(詹) 씨는 기념관을 둘러보며 대만에는 식민지 폭행을 제대로 보여주는 기념관이 거의 없어 역사가 잊혀지고 있다며, 이곳에 와서야 진실을 알게 되어 매우 의미 있었다고 소감을 밝혔습니다. '90년생'들은 학교에서 일본군의 폭행에 대해 배웠지만, '00년생'들은 진짜 역사에 접근하기 어렵게 되었다는 대만 동포 정(郑) 씨의 말은 역사 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끼게 합니다.

정 씨는 하얼빈 731 부대 유적지를 방문한 경험을 언급하며, 역사를 기억하는 것이 증오를 이어가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지만, 아픔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역사는 항상 존재하며 더 많은 사람이 진실을 알아야 한다고 그는 말했습니다. 이는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교육의 역할에 대해 우리 모두가 공감하며 고민해 볼 만한 주제인 것 같습니다. 역사를 어떻게 기억하고 전달하느냐는 미래 세대의 정체성에도 큰 영향을 미치니까요.

세 번째 소식은 긴박했던 해외 철수 작전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지난 6월 중순 이스라엘과 이란 간의 충돌이 급격히 고조되면서 이란에 체류 중이던 중국 동포들의 안전이 우려되는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중국 정부는 신속히 철수 메커니즘을 가동했고, 이란 주재 중국 대사관의 지도와 지원 아래 이란 화교화인연합회(이란 화련회)가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섰습니다. ✈️

중국 외교부 대변인 궈자쿤(郭嘉昆) 씨는 6월 23일, 당 중앙의 결정에 따라 외교부와 주 이란 등 국가의 중국 공관, 그리고 교통 운수부, 민항국 등 부서의 공동 노력으로 3125명의 중국 시민이 이란에서 안전하게 철수했다고 밝혔습니다.

이란 화련회 집행회장인 마정화(马正华) 씨는 지난 6월 25일 중국신문서비스 기자와 가진 인터뷰에서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과 감동적인 순간을 전했습니다. 그는 '오성홍기를 본 순간, 저는 제가 안전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라며 철수 과정에서의 안도감을 표현했습니다.

마 씨는 이스라엘의 공습이 자신의 집에서 불과 6, 7km 떨어진 곳에서 발생했으며, 엄청난 폭발음이 밤새도록 이어졌다고 회상했습니다. 처음에는 충돌 규모가 크지 않다고 생각했지만, 14일부터 공습이 격화되자 현지의 중국 유학생들과 출장자들은 극심한 공포에 떨었다고 합니다.

화련회는 대사관의 지도 아래 즉시 철수 행동팀을 구성하고 철수 작업을 도왔습니다. 6월 15일 18명의 유학생과 출장자들을 대상으로 1차 철수가 이루어졌고, 상황이 더욱 긴박해지면서 16일부터는 철수 규모가 점차 늘어났습니다. 6월 20일까지 화련회는 총 12차례에 걸쳐 약 430명의 동포가 이란을 떠날 수 있도록 돕고 조직했다고 합니다.

마 씨는 이번 작전이 '영(0)명 사상자, 영(0)명 손실'로 진행되었으며, 모든 동포들을 제3국 국경까지 안전하게 보냈고 단 한 사람도 남겨두지 않았다고 평가했습니다. 이는 매우 어려운 상황 속에서 이루어낸 값진 성과라고 할 수 있겠죠.

마 씨는 이란에서 사업하는 친구와 통화 중 바로 옆 거리에서 폭발이 일어나 친구가 황급히 전화를 끊었던 아찔한 순간도 전했습니다. 이런 위험 속에서도 그를 지탱한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그의 아들은 테헤란 대학교에서 유학 중이었고, 1차 철수 때 먼저 떠났다고 합니다. 그는 아버지로서 아들을 먼저 철수시키는 것이 자신의 책무였지만, 자신은 마지막까지 남아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철수 작업팀은 꼬박 4일 동안 거의 쉬지 못했고, 잠자는 시간은 총 6시간도 채 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새벽에도 철수 관련 전화를 받고 즉시 대사관에 보고했으며, 대사관 직원들도 즉시 응답하며 긴밀하게 협력했다고 하니, 모두의 헌신적인 노력이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마 씨는 철수 과정에서 가장 감동적이었던 순간으로 아제르바이잔 국경에 도착했을 때 현지 화련회와 대사관 직원들이 오성홍기를 들고 맞이해 준 순간을 꼽았습니다. 그때 진정으로 자신이 안전하다는 것을 느꼈다고 해요. 그는 이번 철수 경험을 통해 중국인으로서 중국에서 생활하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안전한지를 진심으로 느꼈다고 말했습니다.

이란 화련회 비서장인 왕보양(王博扬) 씨는 중국신문서비스와의 인터뷰에서 철수 과정의 어려움을 상세히 전했습니다. 갑작스러운 충돌 격화로 인해 이란을 떠나려는 사람이 급증하면서 테헤란 시내는 극심한 교통 체증을 겪었습니다. 테헤란에서 서쪽으로 약 30킬로미터 떨어진 위성 도시 카라지(卡拉季)까지 가는 데 약 4시간이 걸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또한, 갑작스러운 공격으로 현지 주민들도 공포에 떨었고, 테헤란 주유소에서는 심각한 기름 부족 사태가 발생했습니다. 기름이 없거나, 줄을 서도 5리터나 15리터만 넣을 수 있었고, 주유소마다 2~3킬로미터의 긴 줄이 늘어서 한 시간 넘게 기다려야 했다고 하니, 철수 차량의 연료 확보에도 큰 어려움이 있었겠죠.

이란-아제르바이잔 접경 지역인 아스타라(阿斯塔拉) 국경에서도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평소 중국인이 이 국경을 이용하는 경우가 적었고, 국경 자체의 통행 능력도 부족하여 효율이 매우 낮았다고 합니다. 6월 17일 하루에만 약 300~400명의 중국인이 이곳으로 몰렸고, 러시아, 파키스탄 등 다른 국가의 철수 인원까지 더해져 국경 전체가 극도로 붐볐습니다. 각종 검문과 심사로 인해 한 시간에 2~3명밖에 통과시키지 못할 정도로 통행이 지연되었다고 하니, 철수 과정이 얼마나 험난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왕 씨는 이번 철수 작전이 중국 대륙 여권 소지자뿐만 아니라 홍콩, 대만 동포와 중국인의 외국인 배우자까지 모두 포함하여 이루어졌다고 강조했습니다. 비록 여러 어려움을 겪었지만, 최종적으로 모두 안전하게 철수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성공적인 작전이었다고 말했습니다. 이번 사례는 국가가 자국민을 보호하는 데 있어 국적과 관계없이 포용적인 태도를 보였음을 보여줍니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소식은 외교와 관련된 것입니다. 중국 외교부는 최근 필리핀의 전 상원의원인 토렌티노(Tolentino) 씨에 대해 제재를 가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이는 토렌티노 씨가 한동안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중국 관련 문제에 대해 악의적인 언행을 일삼으며 중국의 이익을 훼손하고 중필 관계를 해쳤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중국 정부는 국가 주권, 안전, 발전 이익을 수호하려는 결의가 확고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번 제재에 따라 토렌티노 씨는 중국 본토와 홍콩, 마카오에 입국이 금지됩니다. 이는 특정 정치인의 행위에 대해 중국이 강력하게 대응하며 자국의 입장을 분명히 한 사례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중국의 여러 단면을 보며 다양한 공감 포인트를 발견했습니다. 지역 사회의 발전 노력, 역사적 진실을 기억하려는 움직임, 그리고 해외 위기 상황에서 자국민을 보호하는 국가의 역할까지. 이 모든 이야기들은 '모두가 공감하는 세상'을 향한 저희 블로그의 목표와 맞닿아 있음을 느낍니다. 여러분은 어떤 소식에 가장 공감하셨나요? 댓글로 함께 이야기를 나눠주세요. 

다음 소식에 만나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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